
평양냉면
냉면 입문: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왜 다른가
'밍밍하다'와 '중독된다' 사이 어딘가에 있는 평양냉면, 매콤한 회무침이 올라가는 함흥냉면. 북한에서 내려온 두 냉면의 역사와 식초·겨자 넣는 법, 가위로 자르는 것이 괜찮은지까지 알려 드립니다.
냉면이란: 겨울 음식이 여름 음식이 되기까지
냉면은 '차가운 국수'라는 뜻으로, 메밀이나 전분으로 뽑은 면을 차가운 육수에 말거나 매운 양념에 비벼 먹는 음식입니다. 지금은 한여름 대표 음식이지만 원래는 겨울 음식이었습니다. 메밀 수확이 끝난 겨울, 살얼음이 낀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따뜻한 온돌방에서 먹는 것이 평안도·함경도의 풍습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문헌 《동국세시기》에도 11월의 시절 음식으로 냉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냉동 기술이 없던 시절 여름에 얼음을 구하기 어려웠으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냉장고가 보급된 20세기 중반 이후 냉면은 여름 음식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삼겹살이나 갈비를 먹은 뒤 '냉면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한국 고깃집의 공식이 되었습니다.
평양냉면: 슴슴한 맛의 세계
평양냉면은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을 소고기(때로 꿩·돼지고기)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섞은 차가운 국물에 말아 냅니다. 고명은 편육, 삶은 달걀, 무절임, 오이 정도로 단출합니다. 첫맛은 '아무 맛도 안 난다'고 느낄 만큼 슴슴하지만, 메밀 향과 육수의 은근한 감칠맛이 뒤늦게 올라오며 중독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맛에 빠진 사람들을 '평냉 마니아'라 부릅니다. 한국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들이 서울에 문을 연 우래옥(1946), 을지면옥, 필동면옥, 을밀대 같은 노포가 평양냉면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한 그릇 1만 3,000~1만 7,000원으로 냉면 중 가장 비싼 편입니다. 메밀면은 잘 끊어지기 때문에 가위 없이 그냥 먹는 것이 '정석'으로 통하지만, 자르고 싶다면 자르셔도 됩니다. 식초와 겨자는 처음엔 넣지 말고 국물 맛을 본 뒤 조금씩 더하세요.
함흥냉면: 매콤한 비빔의 원조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 전분으로 뽑은 가늘고 질긴 면에 고춧가루 양념을 비비고, 가자미나 홍어를 매콤하게 무친 '회'를 올린 비빔냉면입니다. 함경도 함흥 지역은 메밀보다 감자 재배가 많아 전분 면이 발달했고, 동해의 생선을 양념에 무쳐 얹은 것이 특징입니다. 면이 매우 질기기 때문에 이쪽은 가위로 잘라 먹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서울에서는 오장동 함흥냉면 골목이 유명합니다. 1950년대 함흥 출신 실향민들이 모여 시작한 곳으로, 지금도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 함흥냉면'이 영업 중입니다. 함흥냉면집에서는 면을 다 먹기 전에 따뜻한 육수를 부어 국물처럼 먹는 것도 방법이며, 이 육수는 주전자에 담겨 테이블에 놓이거나 요청하면 줍니다. 매운 양념에 참기름과 설탕을 살짝 더해 비비면 맛이 부드러워집니다.
물냉면·비빔냉면·밀면·막국수: 메뉴판 정리
일반 식당의 냉면 메뉴는 두 가지입니다. 물냉면은 차가운 국물에 만 것, 비빔냉면은 빨간 양념에 비빈 것입니다. 고깃집 냉면은 대부분 평양식·함흥식을 엄격히 따르지 않는 '대중 냉면'으로, 새콤달콤한 육수에 전분이 섞인 쫄깃한 면을 쓰며 5,000~9,000원으로 저렴합니다. 삼겹살 뒤에 먹는 냉면은 대개 이쪽입니다. 지역 변형도 알아 두면 좋습니다. 부산 밀면은 한국전쟁 때 밀가루로 냉면을 재현한 것으로 면이 부드럽고 육수가 달콤합니다. 강원도 막국수는 메밀면을 김치 국물이나 양념에 비벼 먹는 소박한 음식이고, 진주냉면은 해물 육수에 육전(소고기 전)을 올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회냉면은 함흥식처럼 회를 올린 비빔냉면, 열무냉면은 열무김치 국물에 만 여름 냉면입니다.
냉면 맛있게 먹는 순서
냉면이 나오면 먼저 국물을 한 모금 마셔 기본 맛을 확인합니다. 그다음 식초를 면 위에 한두 바퀴 두르고(국물이 아니라 면에 뿌리면 면이 탱글해집니다), 겨자는 젓가락 끝에 조금 묻혀 국물에 풀어 넣습니다. 둘 다 조금씩 더하며 자기 취향을 찾는 것이 요령입니다. 평양냉면 노포에서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먹는 것을 권하기도 하니 먼저 그대로 드셔 보세요. 면이 길고 질기면 직원이 주는 가위로 한두 번 잘라도 됩니다.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국물과 함께 후루룩 먹고, 중간중간 삶은 달걀과 편육을 곁들입니다. 달걀은 처음에 먹어 속을 보호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냉면집에서 함께 나오는 따뜻한 육수(면수)는 식전에 마시는 것이며, 무절임과 김치는 리필이 됩니다.